경북 상주의 가톨릭 역사는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해 1827년 정해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신앙 고백비가 서 있는 삼괴 2리 마을에는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金海) 김씨 집안 김복운(金福云)의 아들 네형제가 열심히 천주교를 믿어 온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 중 차남인 삼록(三錄, 도미니코, 1843-1935년)은 특히 신앙이 돈독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른 형제들은 모두 박해가 두려워서 신앙을 버렸으나 김삼록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박해의 참혹한 손길을 피해 목숨을 구한 그는 1886년 프랑스와의 한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으로 공식적인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94년부터 1900년 초 김삼록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직접 새겼는데 자신과 집안의 문중이 살고 있던 석단산 아래 높이 127cm, 폭39cm, 두께 22cm의 화강암에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비석 몸체와 십자형을 하나의 돌로 깎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갓을 얹어 신앙 고백비를 건립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새겼다.
신앙 고백비의 비문(碑文)과 해제(解題)는 다음과 같다.
天主聖敎會 聖號十字嘉 천주 성교회 성호 십자가
第一 天主恐衛咸 첫째는 천주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모신다.
第二 敎化皇衛咸 둘째는 교황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三 主敎衛咸 셋째는 주교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四 神夫衛咸 넷째는 신부님을 받들어 모신다. (神夫는 神父의 오자)
第五 敎于衛咸 다섯째는 신자들(교우)을 받들어 모신다. (敎于는 敎友의 오자)
奉敎人 金道明告 (천주)교인 김 도명고(도미니코) 제작
癸卯生本(古)盆城(今 · 金海) 계묘년(1843)에 출생, 본관은 분성(김해) 金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