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내에 위치한 호야나무는 1790 ~ 1880년 사이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달아매었던 나무로써 일부는 나무에 매달려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또 죽지않은 일부는 끌어져 내려와 귀양길을 떠나는 도중에, 또는 귀양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의 피를 머금은 '순교의 나무'입니다. 아직도 저 나무에 철사줄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해미읍성내에 위치한 호야나무는 1790 ~ 1880년 사이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달아매었던 나무로써 일부는 나무에 매달려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또 죽지않은 일부는 끌어져 내려와 귀양길을 떠나는 도중에, 또는 귀양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의 피를 머금은 '순교의 나무'입니다. 아직도 저 나무에 철사줄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충남 보령에 위치한 순교성지 갈매못은 처참했던 한국 교회 순교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는 땅으로, 1866년 병인박해때 신자들의 희생을 줄이려 스스로 자수한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외 두분의 프랑스 신부님과 교회의 중추인물이었던 두분의 신도회장이 군문효수를 당한곳이다. 수많은 무명 순교자.....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피를 흘리며 하느님께 나아간 곳이다.
20131020 / 갈매못
죽기전에 꼭가봐야할 여행지로도 꼽힌 대전교구 최초로 설립된 공세리성당은 신유박해와 병인박해때 서른두분의 순교자를 배출한 가톨릭 순교성지이다.
현재의 건물은 드비즈 신부가 1921년 지은 근대 고딕식 조적조 건물로, 경내에 봉헌된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에는 서른두분의 유해가 모셔져있다!
(충남지정문화재 제144호)
경북 상주의 가톨릭 역사는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해 1827년 정해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신앙 고백비가 서 있는 삼괴 2리 마을에는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金海) 김씨 집안 김복운(金福云)의 아들 네형제가 열심히 천주교를 믿어 온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 중 차남인 삼록(三錄, 도미니코, 1843-1935년)은 특히 신앙이 돈독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른 형제들은 모두 박해가 두려워서 신앙을 버렸으나 김삼록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박해의 참혹한 손길을 피해 목숨을 구한 그는 1886년 프랑스와의 한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으로 공식적인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94년부터 1900년 초 김삼록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직접 새겼는데 자신과 집안의 문중이 살고 있던 석단산 아래 높이 127cm, 폭39cm, 두께 22cm의 화강암에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비석 몸체와 십자형을 하나의 돌로 깎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갓을 얹어 신앙 고백비를 건립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새겼다.
신앙 고백비의 비문(碑文)과 해제(解題)는 다음과 같다.
天主聖敎會 聖號十字嘉 천주 성교회 성호 십자가
第一 天主恐衛咸 첫째는 천주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모신다.
第二 敎化皇衛咸 둘째는 교황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三 主敎衛咸 셋째는 주교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四 神夫衛咸 넷째는 신부님을 받들어 모신다. (神夫는 神父의 오자)
第五 敎于衛咸 다섯째는 신자들(교우)을 받들어 모신다. (敎于는 敎友의 오자)
奉敎人 金道明告 (천주)교인 김 도명고(도미니코) 제작
癸卯生本(古)盆城(今 · 金海) 계묘년(1843)에 출생, 본관은 분성(김해) 金氏이다.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며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1791년 신해박해때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신앙의 요람이다.
원래 풍남문 성벽을 헐어낸 돌로 주춧돌을 세웠고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 완성되었다. 성당 내부의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우며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과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들을 배치한 상부의 조화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전북 완주군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天呼) 성지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170여 년 동안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무명 순교자들 및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천호산에 묻혀 있다.
여산 숲정이 부근 백지사(白紙死)터 성지는 동헌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래에 1866년 병인 박해가 계속 진행되어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곳이다.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번 거듭하여 질식사 시키는 방법인 백지사형, 일명 '도모지사(塗貌紙死)' 라고도 한다. 백지사형이 이루어지던 동헌은 현재 전북 기념물 제93호로 보존되고 있다.
숲정이 성지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자라잡은 여산에 위치하여 일찍 가톨릭을 전해받은 반면, 박해의 역사가 어느지역보다 심하고 길었던 비극의 장소였다. 특히 당시 여산에는 부사와 진영이 있어 사법권을 자체로 행사할수 있었기에 더욱 박해가 심한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