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창에 위치한 운흥사는 신라 흥덕왕때 운수스님이 창건했고 당시 동림사棟林寺라고 불렀다고 구전되어온다. 당시에는 운흥사 뒤편 최정산 850m에 건립되었으며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광해군~영조재위시라 하고, 1760년무렵 간행한 여지도서輿地圖書 대구부大邱府의 불우佛宇조에 최정산 운흥사가 실려 있다 한다.
두그루 오래된 느티나무 사이로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2014 / 최정산 운흥사
석가여래부처를 모신게 대웅전이나 가끔 아미타부처를 모시면서 대웅전현판을 붙여놓은 사찰들이 있는데 운흥사도 그러했는데 아미타부처를 모신 전각을 극락전이라 부른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 165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조성주체, 제작자 등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밝혀진 불상 가운데 조각승려 도우가 제작한 첫 작품으로 17세기 조각승의 계보, 작품 활동 및 화풍 전승관계를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고 최근 보물 제1814호로 지정되었다!
양 손에 큰 바라를 들고 전진·후퇴·회전하면서 추는 춤이다. 종류는 천수바라(千手哱囉)·명바라(鳴哱囉)·사다라니바라(四陀羅尼哱囉)·관욕게바라(灌浴偈哱囉)·막바라·내림게바라(來臨偈哱囉) 등 6가지가 있고 복장은 장삼에 붉은 가사를 두른다. 음악은 징·북·호적 등에 맞추어 추며 천수바라·사다라니바라는 범패에 맞추어 춘다. 악귀를 쫓고 도량을 청정하며 마음을 정화하려는 뜻에서 춘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01406 / 법주사
법주사는 사적 제503호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참조 -브리테니커 사전)
201406 / 법주사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
보물 제1360호 삼존불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8장의 그림이 보관되어 있어 팔상전이라 불리우며 팔상전은 조선시대의 목탑으로 국보 제55호이며, 현존하는 우리 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이다.
법주사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진영각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
보물 제1417호 희견보살상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있는 석련지는 높이 1.95m, 둘레 6.65m의 돌로만든 작은연못으로 예전에는 물을 담아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상
원광국사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대구 대덕산에 위치한 석굴사찰 원기사
관음전 - 석굴안에 위치한 관세음보살
20140609 / 원기사
사찰입구에 위치한 석가여래상. 손모양(수인)은 중생에게 복을 베풀고 두려움을 없에준다는 여원인이다.
창건주의 공덕비와 부도
특이하게 석굴에 조성된 산신각
대웅전에는 아미타부처와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사찰을 둘러산 석벽위에 미륵불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임휴사는 대구 앞산(대덕산)에 있는 천년고찰로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이다.
신라 경명왕5년(921년)에 영조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순조11년(1811년)에 무주선사가
중창하였다. 임휴사라는 절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추격을 피하여 은적사에 숨어 있다가, 안일사를 거쳐 이 절에서 쉬어 갔으므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웅전
오백나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