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KIM GUN-HONG holylandkorea@naver.com
묘재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난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으로 남종삼 성인이 살던 곳이다.남종삼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학문과 사상, 그리고 천주교 입교 등에서 아버지 남상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래 생부는 남원교이나 종숙부인 남상교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갔다.
남종삼은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들을 통해 서구 열강과 동맹을 맺으면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대원군은 남종삼의 상소문을 받아들였으나 주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상황이 바뀌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남종삼은 묘재에서 피신하다가 붙잡혀 순교하였다.
남상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아들 남종삼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된 뒤 체포되어 공주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1920년대부터 이 마을에 신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교우촌을 이루었고, 1938년에 목조 건물의 공소를 신축하였다. 유택 앞에 있는 옛 공소 건물은 1955년 9월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학산 공소는 1989년에 신축하였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8명에 이른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8명에 이른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