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재 남쪽의 옹기점의 교우촌을 도문공소, 또는 싸리재 공소는 영동지역 최초의 공소이며, 이공소를 전신으로 해서 양양성당이 만들어졌다.
이광재 신부는 1939년 7월25일에 양양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해서, 38선에 가장 가까운 성당으로 38선을 넘는 중요한 장소로 함흥교구와 연길에 있던 수녀원 페쇄로 피난하는 수녀들과 덕원신학교의 신학생 신부들과 많은 신자들을 36선을 넘도록 도와주었다.
소련군이 골롬반 선교회 신부들을 추방해 빈 북쪽성당 양떼를 돌보기 위해 평강, 원산까지 사목했는데, 1950년 북한교회 신자들을 향해떠났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춘천교구는 이광재신부를 기억하며 현양하고 그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38선 도보순례'를 매년10월 초에 실시하고 있다.
20140215 /양양
이광재 신부상
이광재(디모테오)신부 순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