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지방의 선교 요람지인 신나무골에는 1827년 정해박해 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에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1837년 싸스땅 신부와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회장 등 역대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하였고, 1849년부터 1861년까지 최양업 신부가 경상도 지방포교 활동을 위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리고 1860년 경상도 지방 박해 때 이곳에서 한티로 피난하여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장남 배도령 스테파노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대구지역 교회 첫 본당터
깁보록 신부상 (로베르 신부)
병인박해 당시 큰아들과 함께 목이 잘려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가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