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는 논산시 연산면 위치한 사찰로, 고려 태조 19년에 왕건후백제를 평정하고 이곳에 국찰로 창건토록 한 개국사찰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어감에 따라 이 명하여 개태사를 창건토록 하였는데, 이는 태조가 전쟁을 하면서도 백성이 생업을 유지하게 하며 나라를 세웠음은 부처님과 산신령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개태사라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아들 신검에게 나라를 빼앗긴 견훤이 개태사에서 쓸쓸하게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일대는 백제계백 장군신라김유신 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곳에 가깝고 고금을 통해서도 군사, 교통상의 요지로서,  철확(가마솥,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과 삼존석불상(보물 제219호)이 봉안되어 있다.


돈암서원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고, 또한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아니라 호남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때에도 보존된 충청 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968년(광종19) 혜명(慧明)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名僧) 지안(智眼)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석조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능산리 고분군은 사적 제14호로 부여읍에서 동쪽으로 약 3㎞ 가량 떨어져 있으며  야산의 남사면에 줄을 지어서 배치되어 있는데 동서 양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현재 모두 8기가 알려졌다.
능산리 고분들은 사비시대(538~660)의 백제 왕족묘로 추정된다. 

 


정림사지는 사적 제301호로 1942년 발굴조사 때 강당지에서 "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중건 당시 절이름이 정림사였고, 절터가 중문·석탑·금당·강당이 남북선상에 일렬로 배치되고 그 주위를 회랑으로 두른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배치인 남북일탑식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정림사지5층석탑(국보 제9호)과 정림사지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 있다.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부여박물관은, 주로 백제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6,586평의 대지 위에 건물 총면적은 590평, 전시실 면적은 230평 규모이다 .

 

대조사는  마곡사의 말사이며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한 아래에서 수도중에
관음조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 보살상으로 변해 있어서 절 이름을 대조사라 하였다고 한다. 대조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절의 뒷편 언덕에 있는 보물 제217호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논산 관촉사의 미륵보살입상과 함께 투박하고 개성있는 고려 불상 양식을 담고 있다.
 


Posted by 휴먼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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