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성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8.04.03 남한산성 순교성지02
  2. 2018.04.03 남한산성 순교성지01
  3. 2017.11.02 갑곶성지 - 인천교구
  4. 2017.10.10 순교성지 야월교회
  5. 2017.07.25 해미성지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8명에 이른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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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8명에 이른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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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격렬하게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런 강화지역이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와 이에 이은 병인박해 때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했던 프랑스 함대가 바로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결국 프랑스 군은 후퇴했으나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되게 된다. 갑곶 돈대에서 보이는 바다 건너편의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들이 이슬로 사라졌다.

이 박해로 성연순과 원윤철이 통진에서, 1868년 박상손, 우윤집 등이 강화에서 순교했고, 1879년에는 통진에서 권 바오로가 순교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비가 세워져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평생 동안 아버지 박 바오로(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를 서울 왜고개 성지에서 삼성산으로 옮긴 이)처럼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정리하며 사셨던 증거이자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모신 묘가 있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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