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부지를 희사하여 성모당의 초석을 닦은 가톨릭신자인 서상돈 아오스딩은 서울에서 태어나 1871년 대구로 가서 지물행상과 포목상 등을 하며 많은 재산을 모았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 운동은 비록 일제의 방해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으나 일제의 경제침탈과 국권침탈에 관하여 한국인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조-두산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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