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I 사찰 Buddhism'에 해당되는 글 461건

  1. 2012.07.29 소백산 용문사
  2. 2012.04.09 통도사
  3. 2012.03.14 경주 골굴사
  4. 2012.01.05 운문사의 추색
  5. 2011.12.30 경주 분황사
  6. 2011.12.30 감은사지 (사적 제31호)
  7. 2011.12.21
  8. 2011.12.21 삼보일배
  9. 2011.12.21 삼보일배
  10. 2011.12.21 직지사 전경

 

경북 예천에 위치한 용문사는 신라시대 870년에 두운()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문화재로는 윤장대(:보물 684), 용문사 교지(보물 729),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 대장전(殿:보물 145), 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169)가 있다.

 

 

 

보광명전

 

비로자나불

 

 

 

 

국내유일의 경내 소장된 회전식 장경각인 보물 684호 윤장대내부에는 경전이 들어있다.

 

 

 

 

 

 

 

목불삼존좌상 좌우에 위치한 목각후불탱화(보물 989호) 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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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전경

 

 통도사 서운암

 통도사 자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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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에 위치한 골굴사는 불국사보다 약200여년 먼저 창건된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이라 불리며.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며,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법당굴을 비롯한 다른 굴은 그 크기가 다양한데, 골굴사는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하던 선무도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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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신승(神僧)이 창건한 절로 608년(진평왕 30)에는 원광법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937년(태조 20) 중국 당(唐)나라에서 법을 전수받고 돌아온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이 절을 짓고 작갑사(鵲岬寺)라 했으나, 943년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보양국사가 절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많은 전답과 함께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절에는 조계종 운문승가대학이 설치되어 많은 비구니들의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萬歲樓)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미륵전·작압전(鵲鴨殿)·금당·강당·관음전·명부전·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당앞석등(보물 제193호)·동호(보물 제208호)·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3층석탑(보물 제678호) 등이 있다.

 

운문사 금당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바닥돌과 하나로 이루어진 아래받침돌에는 여덟 장의 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경쾌한 모습이며,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각 부분이 잘 균형을 이룬 우아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우리나라 사찰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유형문화재 제424호)는 법회나 설법을 하는 장소이다. 



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



사천왕석주(부물 제318호)는 작압전(鵲鴨殿)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이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가 큰 반면, 돋을새김을 뚜렷하게 하지 않아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체구도 약해보이고 얼굴 생김새도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시대가 내려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로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에 사천왕석주와 같이 모셔져 있다.  높이 0.63m의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으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 불상은 겉옷 안에 표현된 속옷,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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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분황사지 / 20110320



보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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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이 왜병을 막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신문왕이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를 지키는 사찰로서 682년(신문왕 2)에 완공하였다.   동, 서 2기로 구성된 감은사지 3층석탑은 국보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감은사지 / 20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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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I 사찰 Buddhism 2011. 12. 21. 03:30

김천 직지사 /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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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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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직지사 /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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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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