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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재 남쪽의 옹기점의 교우촌을 도문공소, 또는 싸리재 공소는 영동지역 최초의 공소이며, 이공소를 전신으로 해서 양양성당이 만들어졌다.

이광재 신부는 1939년 7월25일에 양양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해서, 38선에 가장 가까운 성당으로 38선을 넘는 중요한 장소로 함흥교구와 연길에 있던 수녀원 페쇄로 피난하는 수녀들과 덕원신학교의 신학생 신부들과 많은 신자들을 36선을 넘도록 도와주었다.

소련군이 골롬반 선교회 신부들을 추방해 빈 북쪽성당 양떼를 돌보기 위해 평강, 원산까지 사목했는데, 1950년 북한교회 신자들을 향해떠났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춘천교구는 이광재신부를 기억하며 현양하고 그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38선 도보순례'를 매년10월 초에 실시하고 있다.

20140215 /양양

 

 

 

 

이광재 신부상

 

 

이광재(디모테오)신부 순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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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지방의 선교 요람지인 신나무골에는 1827년 정해박해 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에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1837년 싸스땅 신부와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회장 등 역대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하였고, 1849년부터 1861년까지 최양업 신부가 경상도 지방포교 활동을 위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리고 1860년 경상도 지방 박해 때 이곳에서 한티로 피난하여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장남 배도령 스테파노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대구지역 교회 첫 본당터

 

 

깁보록 신부상 (로베르 신부)

 

 

 

 

 

병인박해 당시 큰아들과 함께 목이 잘려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가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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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오늘에야 세상일을 마쳤구나.

 

진목정 성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許仁伯, 야고보),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김종륜(金宗倫, 루카)세분의 순교자와 그 가족들이 경주 감영으로 끌려가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하시기까지 박해를 피해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범굴”이 있는 장소로, 일찍부터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100년이 넘는 진목공소는 한국 두번째 신부이자 땀의 순교자라 불리는 최양업 신부님이 사목방문을 다니셨던 8개의 공소 중 한곳이기도하다.

 

1866년 대원군의 병인년 대박해를 피해온 김해 출신 허인백 야고보와 서울 출신 이양등 베드로, 충청도 공주 출신 김종륜 루카 등은 언양 간월산 죽림리(공소)에 모여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곳 산내면 단석산 범굴로 숨어들었다.
1866년~1868년 5월까지 범굴에 숨어살던 허인백 등은 결국 감영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1868년 7월 하순 울산 병영으로 이송돼 그곳 장대벌에서 차례로 순교하였다. 그때 울산 동천 강둑에 묻어두었던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의 시신은 허인백의 부인 박조이의 노력으로 진목정 공소 뒤편 도매산 중턱에 모셨다가 1973년 대구 복자성당으로 옮겼으며 지금 이곳에는 가묘만 남아있다.

 

201401 / 경주 진목정

 

 

범굴로 오르는길

 

 

 

 

 

범굴은 깊이가 약30m로 10명 정도가 숨어살수있는 공간이었다하나 지금은 무너져내려있다. 

 

 

산에서 천주쟁이를 잡으러온 경주관할 포졸들을 만나자 세사람은 '아! 오늘에야 세상일을 마쳤구나' 라며 순순히 오랏줄을 받았다한다,

 

 

범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진목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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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내에 위치한 호야나무는 1790 ~ 1880년 사이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달아매었던 나무로써 일부는 나무에 매달려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또 죽지않은 일부는 끌어져 내려와 귀양길을 떠나는 도중에, 또는 귀양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의 피를 머금은 '순교의 나무'입니다. 아직도 저 나무에 철사줄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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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에 위치한 순교성지 갈매못은 처참했던 한국 교회 순교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는 땅으로, 1866년 병인박해때 신자들의 희생을 줄이려 스스로 자수한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외 두분의 프랑스 신부님과 교회의 중추인물이었던 두분의 신도회장이 군문효수를 당한곳이다. 수많은 무명 순교자.....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피를 흘리며 하느님께 나아간 곳이다.

   

20131020 / 갈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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